티스토리 뷰
짜왕 한 봉지를 사들고 나오니 옆 가게가 도배집이었다. 엥? 여기서 만나네?
유리문이 닫혀 있고 문 손잡이에 광고 책자가 끼워져 있는 걸 보면 '부재중'에다가 한참 되었을 법. 그러나,
그 옆 가게 문을 열었다.
나보다 꽤나 더 늙어보이는 (난 참, 염색을 했다. 아휴유 가려워. 다시는 딸의 꾀임에...) 할배가 비좁은 신발 가게 난로가에서 대파를 다듬고 있었다. (나나 그나..)
"저어.. 옆 가게 누구 없나요?"
"거기두 우리가 해요오. 뭘 찾으셔?"
시골 면소재지 정도의 마을엔 꽤 다양한 종류의 가게가 있다. 그리고, 어느 가게 문이 닫혔으면 필히 그 옆 가게엘 들어가 보라.
"초배지요."
"초배지? 있지이... 어딧나아?? 누가 찾어야지이.."
그는 저쪽 가게 문도 안 열고 신발 진열대 뒤쪽에서 초배지를 세 권 꺼내 놓았다.
"초배지는 많이 안 써어. 차곡차곡 붙이는 게 아니구 듬성듬성.. 엣날에는 흑벽이다가 그냥 도배지를 붙이기두 했는데 무얼.."
"실은, 글씨를 쓸려구요."
"글씨요오?"
"예. 얼마나 있어요?"
"여기이.. 한 권에 스무장 짜리..가 세 권하구, 에에에 열권 짜리 두 묶음이 있네에? 다 가져가실라나?"
"얼만데요?"
"스무장 한 권에 삼천원인데.."
"아아.. 초배지두 싸진 않네요오?"
"에유우... 그냥 이 천원 씩 하지 뭐.. 남는 게 있는지 없는진 몰라도.."
"그럼.."
"에에... 사만 육천 원이네요오.. 허어.."
"예, 다 주세요."
난, 잔돈은 두시라 했다. 남는지 어쩌는지도 모르고, 적잖이 깎아아 준 것 같아 오만원을 주고 나왔다.
저것들, 장 당 백 원 가량하는 종이들에
내 어줍잖은 먹 글씨 편히 쓸 수 있을지란지?
우선,
저 아주 오래된 초배지 접힌 자국을 펴기 위해 돌돌 말아 놓고,
다음 번 내려오면 잘 펴져 있겠지..
글씨 좀 쓰다가
오랫만의 맑은 햇살
마루의 벤자민, 창 너머로 혼자 실컷 쪼이라 하고
밖으로 잠깐 나왔다.
겨울 한 가운데
날 따숩고
종일
인적 없이 고요하고..
'[한수 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 "붓글" / 박원규의 <서예를 말하다> (0) | 2016.01.27 |
|---|---|
| 마영신의 <엄마들> (0) | 2016.01.22 |
| <강촌농무> 8. / 컵라면과 에바 캐시디 (0) | 2016.01.21 |
| 다시, 친구 신청 등에 관하여 (0) | 2015.12.03 |
| 1 년 여 만의 말 (0) | 2015.11.29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