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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 즐거움을 위해 책을 읽는다. 그리고 자신의 관점을 보강하기 위해 책을 읽는다. 일종의 이익활동이다.
대부분의 책 읽기는 소비이기도 하지만, 공부이고 그것을 통해 얼마간씩의 자기 수정 또는, 얼마간씩의 자기 긍정도 이루어지고 그것들은 자기 안에 축적된다.
그래서 까다로운 독자들은 읽을 책을 선택하거나 첫 장을 펼칠 때 대개 신중하며 또한 기대감에 빠진다.
그런데, 나이가 들면 책 고르기에 더 신중해 진다. 새로운 지식의 보충에 관한 열의도 떨어졌고, 오랫동안 피곤하게 갈팡질팡하면서 스스로 완성한(이 정도로 그 완성 과정을 끝내겠다고 생각한) 자신의 세계관과 철학 체계에 혼란을 일으키지는 않을지도 조심하게 된다.
내게, <사피엔스>나 <코스모스>는 새롭고 풍부한, 새로운 지식의 보급 상자이기도 하고 인간에 관한 이해와 인간 삶의 환경에 관한 나의 관점이나 태도를 더 긍정하게 해 주는 책들이었다. 편안하고(얼마간씩은 흥분되고), 감사하다.
그런데 <책>은 그런 것 뿐만이 아니어서 나의 생각이나 행동들을 전면적으로 비판하고 수정을 요구하는 것들도 있다.
<젠더> 문제, <페미니즘> 같은… 신비주의자에게 생명공학 같은..
그것들을 손에 쥘 것인가, 열린 마음으로 책장을 펼치고 끝까지 함께 갈 것인가, 는 자기 반성이나 교정의 준비를 전제로 한다.
<사피엔스>나 <코스모스>의 이야기처럼 <페미니즘> 이론도 마찬가지로 합리적이고 윤리적인 사회과학이며 뿐만 아니라,
페미니즘은 "나의 야만"에 관한 이야기이며 내가 그토록 혐오하는 "야만의 엘리트와 그 장구한 가부장 구조"의 큰 축을 뒤흔드는, 그러면서 도저히 부정하거나 피해 갈 수 없는 당위적 인식론이기 때문이다.
올해 절반 가량의 독서는 감사하게도 이러한, 기존의 도그마적 인식 틀을 벗어난 보다 명석하고 통렬한 사회과학,
미시와 거시 양면으로 보다 풍성한 이야기를 담은 자연과학,
자기 반성의 새로운 인식체계로 안내한 젠더 관련 서적들과 조금씩은 함께 할 수 있었다.
거기에, 아주 오랫만에 새로운 논자와 만나는 <아나키즘>.
책 읽기의 가장 큰 즐거움은 아무래도 나를 대신해서 누군가 나의 말을 해 주는 듯한 책을 읽는 일일 것이다.
특히, 나를 표현하거나 설명하기 어려운 내용들, 내 생각을 제대로 전개하기 어려운 내용들을 누군가 대신해 주고 있다면 얼마나 즐겁고 감사한 일인가.
아나키즘은 이념이라기보다 이상주의이면서 어떻게인가 완성된 이상 세계를 그리고 그것의 획득을 위한 혁명 전략이 아니라
이제까지의 폭력 시스템과 그 참혹한 지배관계를 해체하기 위한 “혁명적 실천에 관한 윤리적 담론”이며 그 기획이다. 특히,
근대 이후 자본주의라 불렸던 하지만, 그보다 더 오래 전부터 있어왔던 노예제, 이윤과 임금을 목적 수단으로 한 저 다양한 방식의 엘리트 폭력 지배 방식의 연장선에서 근대 이전 뿐 아니라 그보다 더 오래 전 후기 구석기나 초기 철기 시대에 까지를 돌아보면서 펼치는,
게다가 최근 또는 오늘날에도 자본주의 산업 문명에 편입되지 않은 많은 대륙 오지의 소수 공동체들의 삶의 양식까지를 관찰하는 희망의 "플랜"이다.
슬로건은, <더 나은 세계>이다.
경찰과 군대가 아니면 유지되지 못하는, 그 폭력을 제도화하고 인간을 산업 시스템에 몰아 넣은 국가, 그 해체나 무력화를 꿈꾼다. 모든 인간의 평등함과 자발성, 자율성, 자치가 가능하고 구현되는 사회를 구상한다. 그래서 아나키즘은 결정론적인 이데오로기가 아니다.
전통적, 본능적으로 기득권자들과 거기 기생하는 엘리트주의자들은 이런 류의 유토피아주의를 폄하하거나 불온시(결정적일 때는 폭력으로 제압, 거세, 삭제한다.) 하지만 그런다고 세상에 이상주의와 이상주의자들이 간단히 없어지는 것은 아니다.
왜곡되게 알려진 바와 달리 아나키스트들은 폭력에 의존하지 않는다. 폭력은 폭력을 제압할 수 없다는 것을 안다. 그래서 일시의 체제전복을 꿈꾸기 보다 현재의 대안적 실천과 미래 만들기에 관심을 가진다.
어쩔 수 없이 체제 안에 살되 체제 이데오로기를 거부하며 나아가 체제 밖의 삶과 사회를 구상한다. 국가를 무시하거나 불복종하고 나아가 탈중심과 이탈과 새로운 공동체 건설을 실행한다.
저자는 이에 관하여 그 실천적 모습들로 1994년 이래의 <사파티스타 해방군>, 그 후의 아르헨티나 <지역 집회>등이나 또 최근, 당면한 세계 문제에 관해 봉기하고 있는 <반 세계화 운동>, (사실은 <진정한 세계화 운동>), <세계산업노동자연맹> 등의 새로운 인터내셔널 구상 움직임들을 예시한다.
아나키스트들은 모든 국가 장벽이 허물어지거나 무력화된, 그래서 모든 인간의 지구 상에서의 자유로운 이동과 노동 선택이 가능한 <진정한 세계화>를 꿈꾼다.
획정된 국가 조건안에서 한정된 직업과 임금으로 노예화된 인간이 아니라, 국경이 철폐되어 보다 자유롭게 대륙을 이동하며 보다 다양하게 자신의 일을 선택하고 그 노동량과 보상을 스스로 조절 결정할 수 있는 사회를 바란다.
유명무실한 국가, 그 안의 다종다양한 존재 양식의 공동체들, 그들의 모든 새로운 <더 나은 사회 만들기>가 가능하도록 돕는 보다 진화한 세계 정부 같은 것도 꿈꾸면서.
아무튼, 저자 <데이비드 그레이버>는 아나키스트 인류학자로서 아직은 제대로 개화되지 않은 <아나키스트 인류학>의 토대를 닦아 놓고 있는 셈이다. 그래서 책 제목이 개론이나 집대성이 아니라 “조각들”이다.
책에서 인용하고 싶은 말들은 수 없이 많지만 관련하여, 그의 글 두 줄만 인용한다.
“인류학자는 결국 실제 존재하는 <국가 없는 사회>를 조금이라도 알고 있는 유일한 학자 집단이다. 이들 다수는 국가가 기능을 멈췄거나 적어도 일시적으로 철수했기에 민중이 자율적으로 자기 삶을 꾸리는 곳에 살았던 경험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이어서는, 그런 곳에서 오히려 보다 나은 삶이 가능했다는 증언도 덛붙인다.
또 아무튼, 이 책을 읽지 않고서 현대 아나키즘에 관해 얘기하기 어려울 것이다. 또, 이 책을 읽지 않고 아나키즘을 제대로 비판 매도하기도 어려울 것이다.
처음 읽으면서는 때때로 조금 독특한 그의 문장이 쉽게 들어오지 않을 수 있으나 다시 읽는다면 훨씬 더 풍부하고 명료한 이야기로 들어올 것이다.
뿐만 아니라, 아나키스트라면 더 읽을 수록 진하게 밑줄 그은 자리가 더 많아질 것이다.
지금까지 “모든 사회는 자기와의 전쟁 중”이고,
모든 국가는 유일하게 무력을 통해 그 갈등을 해결해 왔다.
당신 앞에, 당신 옆에, 당신의 뒤에 그 무력이 있다.
법과 제도, 군과 경찰, 감옥과 감시망, 미디어와 교육..
국가는 당신이 아니며, 국가는 당신을 위해 존재하지 않는다.
인간은 타자의 무력은 두려워하나, 자신의 무력은 두려워하지 않는다.
자유로운 인간은 아무런 무력을 가지지 않는다.
이 책은, 나의 장황한 이야기보다 일목요연하고, 협소한 관심보다 풍부한 내용들로 독서의 즐거움을 만끽하게 해 주었다.
"나의 의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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