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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총명한 역사 해석, 그와 관련한 뛰어난 통찰(주로 과거, 현재에 관한)은 그의 책 표 4에 실린(그가 골라 가져다가 거기 실어달라고 출판사에 부탁하지는 않았을 것이다)은 권위 있는 이들의 엄청난 찬사가 결코 과장이 아님에 동의하게 한다. 분명 그는 인류사나 문명사를 이전의 그 누구보다 사건이 아닌 본질(또는, 정신) 중심으로 단순 명료하게 재구성하고 거기에 보다 객관화된 시각, 참신한 비판의식으로 재해석한다. 그건 또, 기존의 우리들의 진부한 관점이나 그간의 그렇고 그런 관련 텍스트들과는 수준과 질이 다르다(라고 느껴도 된다고 설파한다).
두툼한 책의 페이지 한 장 한 장이 신선하고 재미(그런 성찰과 주장을 내가 하고 있는 것 처럼)도 있다. 유머도 감사할 만큼 배치된다.
그런데, 전작 <사피엔스>가 과거와 현재에 관한 얘기었다면 <호모데우스>는 주로 미래에 관한 얘기이고 그 얘기는 어쩔 수 없이 또 하나의 가상의 구성이다.

현재의 인간의(또, 문명의) 관념과 상상력과 그 언어들로 구성된다. 그도 그 문명 속 사람이며 어떤 특별한 시각이 있다 해도 마찬가지이다.

또 문명 전반에 관한 빠짐없이 완벽한 증거 자료들(이와 관련한 그의 능력과 노력도 충분히 박수 받을 만하다)이 동원되고 분석되었다 해도 현재의 문명 속 고통들이나 그 고통들에 집중하는 자들이 바라보기에는 그의 미래 예견 역시 또 하나의 몽상일 뿐이다. 과거와 현재의 분석에 관해서는 쉽게 동의할 수 있지만 미래 예측에 관해서는 그렇게 하기 어려운 이유이다.

이런 나의 느낌은 또, 역사에는 너무나 많은 변수들이 널려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기도 하고, 내 능력이 현재의 상황을 분석하기에도 벅차기에 그의 생각들에 다분한 동의로 따라잡기가 어렵기 때문이기도 하며 또, 사실, 나의 핵심 관심사가 그의 관심사로 깊이 천착되지 않았다는 불만이 가장 큰 이유일 것이다.
그가 지금 ‘다른 대안이 없다’고 말하는 자본주의 시스템, 이 <산업 문명>(그는 이 용어를 별로 사용하지 않는다)의 참상과 원인에 관해 보다 심각하고 샅샅히 진술하기 보다 그것은 (불행하게도) 어쩔 수 없고 흔들림 없는 현실이니 그 토대에서만 미래를 보라는 논지는 너무 단순화된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역사 학자(이고 문명 연구가)라면 현재로서 아무 ‘대안이 없다’는 너무 쉬운 결론 보다 대안에 관해 여전히(순진한 사람들처럼) 고민하고 추적하면서(지구가 아직은 하나의 문명권으로 완벽하게 통합되지 않았다.) 불확실한 미래보다 확실한 현재 역사의 다양한 방향 전환 방안에 대해 더 모색해야 하는 것은 아닐까. 현재의 인간들이 불쌍하다면 말이다. (그는 사실, 인간을 별로 동정하지 않는다. 왜? 유기물의 결합에 불과하니까. 나도 동의한다. 때로..)
아무튼, 지금 당대의 사람들이 해 볼 수 있는 아무런 방법과 상상할 수 있는 아무런 전략도 없는 것인지,

20세기를 마지막  “인본주의” 시대라고 정의하지만, 호모 데우스의 시대인 21세기가 시작되었다고 하지만, 인본주의 시대의 결정적인 오류는 무엇이었는지, 문명적으로 여전히 20세기나 그 이전을 살고 있는 지구 위 적지 않은 인간들과 그 문명권에 그것들은 어떻게 피할 수 있는 오류인지, 아직은 새로운 세기가 무르익지 않은 상태이니 그 질서나 권력관계가 완전히 자리잡히기 이전에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정말 없는 것인지..

그는 거의 결정론자(또는, 운명론자)처럼 진술하고 이런 대목에서 나는 (스스로 놀랄만큼) 그의 비관주의(그는 중립적인 객관자라고 말한다)에 제동을 걸고 싶어한다.

뭔가 있다고, 있지 않겠느냐고 여러가지 전략들을 점검해 본다.

산업에의 불복종과 투쟁.. 아니면, 산업을 생산자 중심에서 소비자 중심으로.. 그래서 모든 권력이 미래의 선택된 초인류가 아니라 자본가, 부자, 생산자에서 건강하게 부활한 새로운 인종의 품으로 돌아가게 할 수 있는 방안..
헛, 뭐라고? <건강하게 부활한 새로운 인종>?

(이를테면, 무한 생산성에 관한 신화나 생산력 우선의 문명에서 야만적인 분배 방식의 혁명적 변화를 도모하는.. 진화된 인종, 의식으로 기술을 통제하는.. 또는, 욕망과 탐욕을 인간의 관리 대상으로 인식하고 그것을 충분히 제어할 수 있는 새로운 윤리관과 제도..)

이건 내가 순진한 낙관론으로 터억 내놓고 싶은 새로운 대안이 아니라 비관과 결정론의 절망 속에서 마지막으로 꾸어 볼 수 있는 어설픈 꿈일지도, 생명과학과 컴퓨터 공학 등 과학의 진보 본능과 그와 관련한 장미빛 꿈의 불가역성 속에서 다른 대안이 없기에 만지작거리는 망상의 낡은 카드일 지도 모른다. 대략,

그만 하자..

 

어쨋든..
그의 결말..
우울하다.
전편에서의 통찰에 의한 인류에의 한 가닥 희망(우린 이제 좀 더 알게 됐다,라는)을 그것이

거침없이 삼켜버린다.(는 기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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